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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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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재지 : 김천시 대항면 운수리

예로부터 학이 자주 찾아와 황학산으로 불리웠고, 지도상에도 그렇게 표기되어 있으나, 직지사의 현판을 비롯, 택리지등에 황악산으로 명기되어 있다.
황악산 동쪽 산기슭에 자리한 직지사는 신라 눌지왕 2년 (418년)에 아도화상이 창건하였고 문화재로는 보물 제319호인 석조약사여래좌상과 보물 제606호인 삼층석탑등 국가지정문화재 7점이 있으며, 암자로는 운수암, 은선암, 백련암이 있다.

전체적인 산세는 특징없이 완만한 편이나 온 산에 수림이 울창하고 산 동쪽으로 흘러
내리는 계곡은 곳곳에 폭포와 소를 이뤄 그윽한 계곡미를 이루고 있다.
특히 직지사 서쪽 200m지점에 있는 천룡대에서부터 펼쳐지는 능여계곡은 이 산의 대표적인 계곡으로 봄철에는 진달래, 벚꽃, 산목련이 볼만하고 가을철 단풍 또한 절경을 이룬다.


직지문화공원에는 중앙의 음악조형분수를 중심으로 일반 공원시설물로는 광장3개소, 폭 25m에 높이가 17m에 이르는 대형 2단 폭포, 직지사 경내의 맑은 물을 그대로 유입 공원 내로 흐르게 하는 계류시설 330m와 어린이 종합놀이시설 10종, 지압보도, 마사토, 점토블록으로 조성된 산책로 3,600m, 모양이 각기 다른 정자 및 파고라 9개소, 잠시 쉴수 있는 의자 140개소 등 각종 편의시설을 설치하였고, 문화시설로는 국내외 17개국 유명 조각가들의 작품 50점을 추진위원회를 구성 엄선한 후 다양하게 설치하였으며, 문인협회 김천시지부의 협조를 받아 자연석에 아로새긴 애송시 20편, 전국관광공예품대상을 수상한 우리지역출신이 제작한 아파트7층 높이의 전국에서 가장 크고 예술적인 가치가 높은 대형장승 2기, 옛 전통미를 재현한 170m의 성곽과 전통담장, 음악, 조명, 분수가 어우러진 환상적인 원형음악분수 1개소, 2천여명이 동시에 관람 할 수 있는 야외공연장 등의 문화시설과 소나무 외 23종의 교목류 1,300 여주, 자산홍 등 관목류 88천본, 맥문동 등 초화류 47천본, 금낭화 등 야생화 39천본 등 다양한 종류의 수목과 관목류, 초목류를 식재하여 계절에 따라 최대한의 자연미가 연출 될 수 있도록 그루마다 포기마다 심혈을 기울여 조화롭고 다양하게 꾸몄으며, 특히, 본 공원조성사업에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소나무 331주와 자연석 6만 톤을 헌수, 헌석 함으로서 20억원의 사업비 절감과 함께 동참하는 주인의식을 함양하는 계기가 되었고 또한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도록 1천여평에 어린이들을 위한 종합 놀이시설을 설치하여 어린이가 노는 시간을 이용 조각, 시비를 감상할 수 있도록 하였고, 그 외에 장애인을 위한 화장실 자동문 설치 등 어린이와 노약자 등도 관람도중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배려하였다.

공원 중앙부의 원형음악분수는 우리나라에서도 손꼽을 만큼 예술성과 작품성이 뛰어난 것은 물론 음악에 맞춰 연출되는 웅장한 사운드와 함께 주·야간에 20여분씩 펼쳐지는 화려한 분수쇼의 연출과, 이외에도 누각 아래로 떨어지는2단 폭포, 우리나라 최대의 대형장승 등은 앞으로 이 지역의 또 다른 명물로 자리 잡을 것으로 기대된다.


* 지 정 : 경상북도 문화재 자료 제 191호 (1987.12.29)
* 위 치 : 김천시 조마면 신안리 588
* 연 대 : 고려시대전기
* 규 모 : 부처높이 2.70m, 대좌높이 0.37m, 머리가 없다.

이 불상이 방치된 골짜기를 탑골이라는 것 외에는 알려진 것이 없다. 땅에 묻혀 있던 것을 밭을 일구다가 발견하였다고 한다. 돌 하나에 불상과 광배가 새겨졌고 머리는 별석으로 새겨 조립하도록했으나 없어졌다. 전면에는 바른 손을 가슴에 올리고 왼손은 아래로 드리워서 보병을 잡았다. 여래상인지 보살상인지 확연치 않으나 겉옷의 광배는 연꽃문을 새긴 두광과 불꽃문을 새긴 신광으로 구분되고, 뒷면은 주형의 평편한 광배로 조각했다. 조각 표현과 독립불상인 점으로 보아 여래상으로 추정되며 1996년에 보호각을 신축하였다.


* 위 치 : 김천시 조마면 강곡리 강평
* 연 대 : 1811년 (순조11년)
* 소유자 : 진주강씨 문중

자동서원은 남와, 강설, 기재 강여호 두 선생이 청환 요직을 거쳐 책난을 하다가 나라에 충절을 다하고 물러나서는 스승을 쫓아 학문을 강해서 덕을 기르고 도를 닦아서 문행과 훈업이 빛나니 뒷 사람이 그 풍속을 우러러 보고 그 덕을 사모해서 숭봉하고자 하는 이가 많기에 도남서원 원장 김기찬, 사양서원 원장 이동필, 병산서원 원장 도유사 이제, 매림서원 원장 박민국, 낙봉서원 원장 김태온, 동갈서원 원장 장수훈등 555명의 영남내의 서원과 유림의 제현이 1804년(순조 4) 12월 6일부터 1806년 (순조 6년) 9월 3일에 걸쳐 발의합모하고 연자조력하여 유전을 마련하고 공사를 시작한지 5년뒤인 1811년(순조 11년)에 준공하여 강당을 자동서원이라하고 사우를 상의사라고 남화, 기개 두 선생을 향사하였다.

1868년(고종 5년)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927년 중수 복원하고 학암 강석구, 호은 강이하를 추향하였다.
남와 강설은 진주 강씨 고려 병부상서 은렬공 민첨의 14세 손이요. 김천 찰방 강부의 손자로써 충남 회덕에서 출생, 1612년 (광해 4년)에 증광 진사시에 합격하고, 1636년(인조 14년) 병자호란 때는 기호지방 선비들의 의병장으로 추대 받은 바 있다.

1628년 입김산하여 지금의 구성 광명리(기를)에 거처를 정하고 정한강 문하에서 공부하고 수신제가하고 도의교우하며, 사친이효하고, 겸공으로 교자손하였다. 특히 1592년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김산향교를 1634년 (인조12년) 대성전과 명륜당을 향내 유림의 협조를 얻어 재건하고, 유지를 받들어 아들 강여구가 동.서재와 묘문을 복원하였다.



* 지 정 : 신라시대 418년 눌지왕 2년
* 위 치 : 농소면 봉곡리 485번지

백마산(또는 氣水山)에 있는 고방사는 절에 전래하는 현판기문에 따르면 아도화상이 직지사와 함께 418년에 창건했다고 하나 다른 기록은 없다.


기문에 의하면 1636년에 옥청산인이 적묵당을 현철상인이 설선당을 그리고 1656년에는 학능선인이 청원루 5간을 창건하였고 지금의 절은 1719년에 계현 수천대사가 중창했다.
유물로는 1.8m 지름의 홍고가 있었으나 파손되고 경판52장이 관음전에 보관되고 있다. 원래 고방사는 지금의 자리에서 동남쪽으로 약 1km떨어진 골짜기에 있었는데, 그 곳에 있는 약수가 유명하여 약수터라고도 불린다. 이 약수는 100일간 기도를 올리고 부정, 육식, 다툼 등 금기사항을 엄수해야만 효험이 있다는 것이다. 이를 어기고 약수를 마신 사람은 피를 토하고 급사한다고 전한다.


* 연 대 : 신라시대 834년 흥덕왕 9년
* 위 치 : 농소면 봉곡리 15번지

경북 김천시 농소면 봉곡 1동에 위치한 신흥사는 신라 흥덕왕 9년(834)에 도의 선사에 의하여 건립되었다 하며 그 후의 내력은 자세하지 않으나 1901년에 소실되었다가 1959년에 복구되었다.


당시 건물은 법당인 극락전과 칠산각 그리고 2동의 요사가 전부이다. 그후 1993년 주지 윤지원 비구니에 의하여 성금 정판석, 정판용 형제의 성금 500만원과 신도들의 성금등 주지의 성력으로 대웅전을 신축, 오늘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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